여름 휴가철을 겨냥해서 개봉했던 한국영화 빅4의 흥행이 부진하다며 이미 제작된 영화들을 보유하고 있는 제작사들을 걱정해주는 기사를 봤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빅4는 한산 용의출현, 비상선언, 외계인, 헌트입니다.
그런데 제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헌트는 괜찮다던데 221만명의 관객밖에 동원하지 못했더군요. 그래서 이 글을 적어봅니다.
한국영화 빅4 부진을 다룬 기사에서는 관람료 인상, OTT 시장 확대로 인해 관객이 상영관을 찾지 않는다는 것을 원인으로 꼽았는데요. 저 이유들은 곁가지 아닌가요?
지인들의 말로는 한산, 외계인, 비상선언 모두 감독들이 지난 흥행 성적을 믿고 투자자들의 돈을 시궁창에 쳐 박았다고 하더군요. 그들의 말을 제가 좀 그럴듯하게 바꿔서 선민의식과 매너리즘에 빠져 주인을 물 먹인 노비들의 장난감이라고 바꿔줬습니다. 그랬더니 다들 제 말이 맞다네요.
안 봐도 비디오.
작가와 싸우기에는 감독들의 지위가 너무 높다고 생각해서 자신들이 각본을 쓰고, 연출을 해서 벌어진 촌극일 뿐입니다. 그 결과 시장의 환호에 취해 선민의식을 갖게되고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민주주의 사회에서 존재하지 않는 계급에 취해 쩐주들의 재산에 손해를 끼쳤지요. 만약 쩐주들이 손해에 대한 보상을 그 목숨으로 받겠다고 했다면 과연 그럴 수 있었을까요?
수 만개의 부품이 들어가는 최첨단 우주선을 만들면서 자잘한 부품 한 개를 만들기 귀찮다고 빼고 조립을 한거죠. 만약 그 우주선에 자신의 가족을 태운다면 그렇게 했을까?
이번 한국영화 빅4의 부진 이유
1. 수준 이하의 컨텐츠 품질
영화가 무엇입니까?
작가의 상상력을 글로 옮기고 (1차), 그 글에 구성을 입히고 (2차), 감독이 구성이 끝난 글을 화면으로 옮기고(3차), 그 영상에 재미를 붙이기 위해 편집해서(4차) 관객 앞에 내놓는 상품입니다.
이 상품은 투자자들에게 수익을 안겨주고, 관객에게 재미를 선사하고, 스텝들과 감독에게 소득을 만들어주고, 배우들에게 부와 명성을 쥐어줘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위에 말한 4차에 걸친 대 역사에서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과정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갈등입니다. 작가와, 감독, 감독 내면의 탐욕, 배우와 스텝까지 얽혀서 갈등이 만들어집니다. 예술적 가치에 치중하는 작가, 상업적 가치에 치중하는 감독, 현실적 가치에 치중하는 스텝과 배우가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는 과정에서 필수불가결한 갈등이지요.
이 갈등이 위력과 위계에 의해서 해결된다면 그 작품은 개차반이 되는 것이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서 해결되면 명작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화인데 감독이 각본을 한다는 것은 갈등을 피하는 행위입니다. 본인의 과거 성적, 이름값, 배우들의 티켓파워를 내세워서 영화의 품질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과정인 갈등을 회피하는거죠. 그 결과 돈과 시간을 들여서 볼만한 영화가 없어져서 점점 관객이 떠나는 것입니다.
* 최근 개봉한 작품 중 그나마 헌트가 이정재씨가 주연과 각본, 감독을 맡은 것으로 아는데 평이 좋더군요. 진짜 입소문이 난 케이스입니다. 다만, 소재의 특성상 흥행에 가속도가 붙기는 어렵기 때문에 아쉬울 뿐인데요. 전 지인들이 헌트를 본 평을 들으면서 이정재씨가 정말 머리 터지게 힘들었겠다 싶었습니다. 권한과 권리를 모두 가진 사람이 고통을 일부러 만들어가면서 제품을 만들기가 어렵거든요.
10년 내내 말하는건데 작가에 대한 고민을 해결하기 전까지는 한국 영화에 성장은 없습니다. 사기꾼에 가까운 장사치들이 가짜 입소문을 내서 티켓 장사에만 열을 올리는 시궁창만 남을 뿐이지요.
2. 경쟁 채널의 성장
전통적인 TV, 영화, 연극의 채널에서 영화는 개떡같이 만들어도 드라마보다 볼만하고 연극보다 접근성이 좋은 상품이었습니다. 하지만 케이블 채널이 성장하고, OTT 채널을 통해서 제공되는 컨텐츠의 품질이 영화와 같거나 더 뛰어나게 되면서 극장을 찾아가 관람을 할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결국 지금의 시장은 영화의 불황이 아니라 볼 것은 넘치는데 볼 시간이 없는 상황입니다.
영화 제작 자체의 구조적인 문제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지만 산업의 뿌리라고 볼 수 있는 작가 육성의 기준이 훨씬 높아지는 계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이제는 세상을 속이기 위한 가짜 정책과 공약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3. 세계적인 경기 침체
요즘 홈플러스의 당당치킨이 유행처럼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제가 사는 지역에서는 이마트에서 파는 치킨이 나오자마자 동이나는 상황이 연일 벌어지고 있는데요.
안정된 직장을 다니는 사람도, 돈이 많은 사람도, 돈이 없어서 굶어죽는 사람도 다들 소비를 꺼리는 분위기라는 뜻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볼 것도 없는 상영관을 비싼 돈 주고 찾아갈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소비자의 지갑을 여는 가장 효과적인 이유는 안정된 미래입니다. 더 잘 살 수 있을거라는 믿음, 희망이 사람들로 하여금 시장에 풀린 재화를 소비하도록 부추기지요.
하지만 지금 상황은 어떻습니까? 노예들의 배를 불려서 그 배를 갈라먹기 바쁜 상황입니다. 기업이야 버티면 다시 성장할테고, 도태되어 망하면 그만큼인 것이라며 가치가 하락한 재화를 쓸어담기 위해 더 침몰할 때를 기다리는 것이 현재의 상황입니다.
이 상황에서 휴가철이라고 영화를 관람하러 극장을 찾을까요?
사회의 구조를 박살내서라도 주머니를 채워야하는 사람들이 입을 쩍 벌리고 앉아있는 상황. 그 입에 최소 수 백, 최대 수 십만의 목숨이 떨어져나가야 끝날 이 하락을 부추기는 상황에서 볼 것도 없는 재화를 돈 주고 소비할 사람은 없습니다.
사족
사실 이미 영화 산업은 죽어가는 중입니다.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어지겠죠. 구조적인 문제도 쉽게 해결하기는 어렵습니다. 드라마 대왕세종에서 윤회가 이도에게 한 말이 있죠. '종놈과 노름을 하는 상전은 없습니다.' 감독과 작가의 구조를 잘 표현한 대사입니다. 저 구조가 깨지는게 먼저일까요? 영화 산업이 사라지고 상전인 감독과 배우들이 유효 채널로 이사를 가서 둥지를 트는게 빠를까요? 전 후자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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