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머릿속이 복잡할때 십 년도 넘은 옛날 드라마를 몰아보는 버릇이 있습니다. 그냥 듀얼 모니터에 켜 놓거나 잠이 쏟아져서 보기 싫을때까지 1회부터 마지막회까지 정주행을 하는데요. 이번에는 kbs 사극인 대왕세종을 보고 있습니다.
* 10대때는 머리가 아프면 일부러 이해하지도 못하는 어려운 책을 읽는 버릇이 있었는데 30대부터 점점 드라마로 넘어갔습니다. 마지막으로 책을 읽은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네요.
2박 3일짜리 취미지만 좋아했던 작품만 돌려보기 때문에 지금도 20여 편의 드라마를 소장하고 10년째 돌려보고 있네요.
kbs 1tv에서 방영했던 대왕세종의 경우 고증 문제나 역사 왜곡 논란으로 싫어하는 분들도 많이 있는 작품인데요. 저는 사실 관계보다는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되는 귀족들의 언쟁과 그들이 추구하던 가치에 더 재미를 느낍니다. 그들이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이 제가 이상향으로 생각하는 정치의 모습이기도 하기에 더 애착을 갖고 소장하는 작품이랍니다.
* 개인적으로 현대의 정치인들에게 kbs의 사극 2편을 권한다면 대왕세종과 정도전을 뽑아서 내밀고 싶네요. 정치라는 놈은 속도보다 세심함 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거든요.
어쨌든 제가 이 작품에서 좋아하는 부분이 꽤 되는데 오늘 그 부분들을 남겨봅니다.
1. 성균관 유생들의 신뢰를 얻는 과정
양녕의 요동 정벌론에 힘을 보태던 성균관 유생들이 충녕에게 신뢰를 보내게 되는 과정이 꽤 재미있죠.
2. 유배지인 경성에서의 이야기
개인적으로 이 드라마를 볼 때 30회부터 켜는 경우가 많은데요. 그 이유가 바로 유배지인 경성에 있는 충녕이 세자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렸기 때문입니다. 마냥 이상향만 늘어놓던 대군이 자신에게 주어진 과업에 눈을 뜨게되는 이야기가 펼쳐지거든요.
3. 맹사성과 충녕이 이야기 1, 2
-1-
택현론을 던져놓고 삼자인 충녕을 검증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장면입니다. 정치를 결심했던 초심을 지키기 위해서 세자가 되는 가장 쉽고 빠른 길을 마다한 충녕에게 맹사성이 다가가는 장면이었는데요. 맹사성이 유비를 빗대어 하는 말이 참 멋졌던 기억이 납니다. 정말 좋아하는 장면은 자신들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아 일을 망치는 충녕에게 서운함을 토로하는 윤회에게 '그 말을 들으면 그게 어디 왕의 재목이라고 할 수 있겠나?' 라는 대사를 던지는 장면이지요. 그 장면부터 충녕과 대화하는 장면까지가 참 좋아서 자주 찾아 봅니다.
-2-
세종이 등극한 뒤에 상왕으로 물러앉은 아버지에게 휘둘리기만 하다가 1년 사이에 사술을 써서 일을 처리하고 아버지를 눌러버린 세종을 보면서 맹사성이 하는 대사가 있습니다. '금상은 참으로 무서운 분이로구만, 정치에 입문한지 1년도 채 되지 않아서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상왕을 궁지에 몰았으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전 이 대사를 하는 맹사성 캐릭터의 그 눈빛이 가끔 보고 싶어서 그 부분을 챙겨본답니다.
4. 경성 백성 앞에서 무릎을 꿇는 세종
이 장면에서 얼마나 울었던지 기억도 나지 않네요. 대왕세종 전체 중 백미라고 부를만한 장면입니다. 정적 조차도 손을 모아 경의를 표하게 만드는 성군의 모습을 보여줬던 장면입니다.
물론 이 부분은 뒤에 이어지는 조말생의 반항과 그 처리, 경녕에 대한 보호, 그 어미인 효빈의 읍소까지 이어지는 부분까지 다 보는 편입니다. 딱 한 부분이 좋다기보다 그 이야기 한 토막이 다 좋다는 표현이 더 옳겠지요.
이 외에도 많이 있는데 제가 주로 즐겨보는 부분은 위와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앞에서 있었던 기록들이 뒤로 이어져서 나중에는 김종서가 조말생을 모시고 북방으로 넘어가 변방을 안정시키는 이야기까지 연결이 됩니다. 하나하나 떨어져 있어도 다 엮어서 매끄럽게 묶어낸 것이 칭찬할만한 작품이 아닐까 싶네요.
물론, 정사(기록된 역사)와의 차이는 분명하고 그 차이가 적지 않음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일의 흐름은 방해받지 않았으니 재미로 보기에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사극은 한국사 공부를 하는게 아니라 흐름을 잡아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보거든요. (퓨전사극은 제외합니다.)
어쨌든 어제부터 머리가 아픈 일이 좀 있어서 아침부터 대왕세종 1회부터 돌려놓고 있는데 오늘은 좀 일찍 종료할 생각입니다. 내일 천안 병원도 가야되고 그 뒤에 할 일도 산더미처럼 쌓여있거든요. 밤 까지 정신을 놓고 있기에는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 이 정도에서 멍 때리는 취미는 끝마쳐야겠네요.
현재 소장하고 있는 옛날 드라마가 있는 분들은 한번쯤 1회부터 끝까지 정주행 시켜놓고 머리를 식혀보는 것도 좋을것 같습니다. 은근히 도움이 많이 되거든요. 다만, 하루를 넘기는 짓은 하지 마세요. 시간이 너무 아까우니까요.
댓글